6장. 1차 브라우저 전쟁

인터넷 익스플로러는 어떻게 넷스케이프를 이겼나

인터넷 익스플로러는 어떻게 넷스케이프 브라우저를 이겼나요?

성능만으로 이긴 것이 아니라 컴퓨터를 켰을 때 이미 깔려 있다는 점이 컸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윈도우 안에 자사 브라우저를 넣고 모두에게 무료로 풀었습니다. 1996년 집계에서 넷스케이프는 80퍼센트 안팎, 인터넷 익스플로러는 한 자릿수에서 갓 벗어난 수준이었습니다. 하지만 바탕화면의 파란 e, PC 제조사와의 계약, AOL 같은 접속 업체와의 거래가 겹치면서 1998년을 지나며 두 브라우저의 점유율은 절반 언저리에서 교차했고, 2002년 전후 일부 집계에서 익스플로러는 90퍼센트 중후반에 이르렀습니다. 법정은 이 과정을 두고 운영체제 독점력을 지렛대로 경쟁을 막았다고 판단했지만, 시장의 승부는 판결 전에 이미 나 있었습니다.

1995년 5월 26일, 마이크로소프트의 임원들에게 회장 명의의 메모 한 통이 배포됐다. 제목은 「인터넷 해일(The Internet Tidal Wave)」. 빌 게이츠가 직접 쓴 여덟 쪽짜리 문서였다. 요지는 자기반성에 가까웠다. 인터넷은 1981년 IBM PC 이후 가장 중요한 변화이며, 회사는 이 변화의 중요도를 최상급으로 격상해야 하고, 모든 제품 계획을 인터넷 중심으로 다시 짜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메모에는 경계 대상도 명시돼 있었다. 인터넷에서 태어난 경쟁자들, 그중에서도 넷스케이프였다. 게이츠는 이 신생 회사가 브라우저를 발판으로 운영체제의 자리를 넘볼 수 있다고 적었다. 브라우저 위에서 프로그램이 돌기 시작하면 그 밑에 깔린 운영체제가 무엇이든 상관없어진다는, 앞서 앤드리슨이 떠들고 다니던 바로 그 시나리오를 게이츠도 정확히 같은 논리로 두려워하고 있었다. 적장의 인터뷰를 가장 진지하게 읽은 독자가 게이츠였던 셈이다.

세계에서 가장 큰 소프트웨어 회사가 직원 수백 명짜리 스타트업을 최고 수위의 위협으로 지목한 문서였다. 넷스케이프의 상장 서류에 적혀 있던 형식적 경고 문구가, 상장 두 달 전에 이미 상대편 회장의 책상 위에서 실행 계획으로 바뀌고 있었다. 이후 6년간 이어질 전쟁의 선전포고문이 있다면 이 메모다. 이 문서는 훗날 반독점 재판에서 증거로 제출돼 전문이 공개됐고, 지금은 인터넷에서 누구나 원문을 읽을 수 있다.

늦잠에서 깬 거인

마이크로소프트는 인터넷에 늦었다. 당시 회사는 사운을 건 윈도우 95 출시에 전력을 쏟았고, 온라인 전략으로는 MSN이라는 폐쇄형 통신망을 준비했다. 앞서 본 PC통신처럼 회사가 담장을 치고 그 안의 콘텐츠로 돈을 받는 모델이었다. 담장 없는 웹이 그런 서비스들을 휩쓸 줄 레드먼드의 전략가들도 처음에는 내다보지 못했다. 1995년 초, 화려했던 윈도우 95 출시 준비 문서에서 인터넷은 부록 취급이었다는 회고가 남아 있다.

깨달음은 아래에서 올라왔다. 대학을 갓 나온 젊은 직원들이 사내 문서로 인터넷의 파급력을 경고했고, 코넬 대학을 방문했다가 학생들이 죄다 브라우저를 띄워 놓고 사는 광경을 목격한 임원의 보고서가 위로 올라갔다. 게이츠의 해일 메모는 그 흐름의 결론이었다. 이 회사의 무서움은 방향을 정한 다음에 나왔다. 1995년 12월 7일, 마이크로소프트는 언론과 분석가들을 모아 놓고 인터넷 전면전을 선언했다. 진주만 공습 기념일이라는 날짜 선택부터가 메시지였다. 기습을 당한 쪽에서 반격을 시작하는 날이라는 뜻이었다. 게이츠는 이 자리에서 회사의 인터넷 관련 계획을 총망라해 발표했고, 언론은 거인이 마침내 잠에서 깼다는 논조로 받아썼다. 넷스케이프의 주가는 출렁였다.

이날 발표에서 마이크로소프트가 꺼낸 카드 중에는 자바의 라이선스 계획도 있었다. 적의 동맹 언어까지 자기 진영으로 끌어안는, 전선을 가리지 않는 물량전의 예고였다.

그해 초로 돌아가면 문제는 무기였다. 회사에는 아직 브라우저가 없었고 밑바닥부터 만들 시간도 없었다. 그래서 사 왔다. 앞서 모자이크 이야기 끝에 등장한 스파이글래스, 그러니까 일리노이 대학에서 모자이크의 상업 라이선스를 받아 간 회사가 공급자였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스파이글래스의 모자이크 기반 코드를 라이선스해 인터넷 익스플로러 1.0을 만들었고, 1995년 8월 윈도우 95의 추가 패키지에 끼워 내놨다. 넷스케이프를 잡겠다고 조달한 무기가 넷스케이프 창업자들이 학생 시절 만든 프로그램의 사촌이었으니, 1차 브라우저 전쟁은 혈통으로 보면 모자이크의 형제 싸움이었다.

거래의 뒷맛은 씁쓸했다. 스파이글래스는 분기 고정료와 인터넷 익스플로러 매출의 일정 비율을 받기로 했다. 그런데 마이크로소프트가 브라우저를 공짜로 뿌리자 매출 연동 로열티는 사실상 사라졌다. 스파이글래스가 항의했고, 소송 직전까지 간 끝에 마이크로소프트가 800만 달러 선을 지불하며 합의했다. 곧 벌어질 전쟁의 예고편이었다. 공짜의 계산서는 다른 누군가에게 돌아갔다.

끼워팔기의 기하학

초기 전황은 일방적이었다. 인터넷 익스플로러 1.0과 2.0은 넷스케이프 내비게이터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기능도 속도도 뒤졌고, 웹 개발자들은 거들떠보지 않았다. 1996년 시점의 점유율 집계들은 넷스케이프를 80퍼센트 안팎으로, 인터넷 익스플로러를 한 자릿수에서 갓 벗어난 수준으로 기록한다. 웹사이트들은 넷스케이프에 최적화됨 배지를 달았고, 개발자 채용 공고는 넷스케이프 호환 경험을 물었다. 제품으로 붙는 싸움이었다면 전쟁은 이때 끝났을 것이다.

넷스케이프 내비게이터 3의 메뉴와 도구 모음을 보여 주는 화면

그림 3. 넷스케이프 내비게이터 3을 2015년에 구동해 촬영한 화면. 1990년대 당시의 사진은 아니다.

그러나 마이크로소프트에는 다른 회사들에 없는 자원이 있었다. 현금과 시간이다. 운영체제와 오피스에서 이익이 쏟아져 들어오는 한, 브라우저 사업부는 10년을 적자로 버텨도 됐다. 게이츠의 메모 이후 브라우저 개발 인력은 수백 명 규모로 불어났다. 넷스케이프 전체 직원 수와 맞먹는 인원이 브라우저 하나에 투입됐다. 버전 3.0은 1996년 여름에 나왔고, 처음으로 쓸 만하다는 평을 들었다. 새 문서 꾸밈 표준을 넷스케이프보다 먼저 지원하는 등 기술에서도 따라잡기가 시작됐다. 추격자는 베낄 대상이 있어 빠르고, 선두는 자기 과거와도 싸워야 해서 느렸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제품 밖에서 싸우는 법을 알고 있었다. 넷스케이프는 개인에게는 사실상 공짜였지만 기업에는 돈을 받았고, 그것이 회사 매출의 기둥이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인터넷 익스플로러를 모두에게 공짜로 풀었다. 개인도 기업도 한 푼 낼 필요가 없었다. 운영체제에서 이미 이익을 내는 회사에 브라우저는 매출원이 아니어도 됐다. 상대의 수익 모델을 무너뜨리는 것 자체가 수익이었기 때문이다. 훗날 재판 과정에서 인용된 마이크로소프트 쪽 인사의 표현을 빌리면, 목표는 넷스케이프의 산소 공급을 차단하는 것이었다.

더 강한 무기는 유통, 정확히는 기본값이었다. 세상 거의 모든 새 컴퓨터에는 윈도우가 깔려 나왔고, 윈도우를 만드는 회사가 그 안에 자기 브라우저를 심었다. 사용자가 컴퓨터를 처음 켜면 바탕화면에 파란 소문자 e가 이미 놓여 있었다. 넷스케이프를 쓰려면 그 e를 눌러 웹에 들어간 뒤, 넷스케이프 사이트를 찾아가, 수십 분 걸리는 내려받기를 마치고, 설치까지 해야 했다. 1990년대 전화선 모뎀 환경에서 이것은 상당한 정성을 요구하는 일이었다. 반대편 선택지는 정성이 필요 없었다. 이미 거기 있었으니까.

행동경제학이 기본값 효과라는 이름으로 정리한 인간의 습성이 있다. 사람들은 웬만해서는 미리 설정된 것을 바꾸지 않는다. 연금 가입률을 좌우하는 것은 홍보물의 설득력보다 가입과 탈퇴 중 무엇이 기본값으로 설정돼 있는가다. 1990년대의 바탕화면에서는 습관과 설치에 드는 시간, PC 제조사의 계약 조건이 함께 브라우저 선택에 영향을 줬다. 두 브라우저의 성능 차이를 비교 기사로 읽고 능동적으로 선택하는 사용자는 소수였다. 다수는 눈앞의 e를 눌렀다. 그리고 한 번 누른 사람은 계속 눌렀다. 즐겨찾기가 쌓이고 손에 익으면 갈아탈 이유는 더 줄었다.

웹사이트 제작자의 셈법도 바뀌었다. 방문자가 몰리는 브라우저에 맞춰 사이트를 만들면 소수파 브라우저에서는 화면이 어긋났고, 그 화면을 본 사용자는 다시 다수파로 옮겨 갔다. 쏠림이 쏠림을 부르는 바퀴가 돌기 시작했다.

기본값의 힘은 계약으로 단단히 보강됐다. PC 제조사들이 윈도우를 설치해 팔려면 마이크로소프트와 라이선스 계약을 맺어야 했는데, 그 계약에는 초기 화면 구성을 건드리지 말라는 조항이 붙었다. 컴팩이 자사 PC의 바탕화면에서 인터넷 익스플로러 아이콘을 지우고 넷스케이프를 올렸다가 윈도우 라이선스 해지 통보를 받고 원상 복구한 사건은, 훗날 법정에서 이 조항의 실체를 보여 주는 증거가 됐다. 세계 최대 PC 제조사조차 바탕화면의 아이콘 하나를 마음대로 바꿀 수 없었다.

접속 서비스 쪽도 같은 방식으로 정리됐다. 당시 미국 가정의 인터넷 관문이던 AOL이 대표 사례다. AOL은 마이크로소프트의 MSN과 정면으로 경쟁하는 회사였는데도, 마이크로소프트는 AOL에 파격적인 제안을 던졌다. 자사 브라우저를 채택해 주면 윈도우 바탕화면에 AOL 아이콘을 실어 주겠다는 것이었다. 자기 온라인 서비스의 경쟁자에게 세상에서 가장 비싼 광고판인 윈도우 초기 화면을 내주는 거래였다. 그만큼 브라우저 전쟁의 우선순위가 높았다는 뜻이다. AOL은 넷스케이프를 버리고 인터넷 익스플로러를 품었다. 수백만 가입자가 쓰는 접속 프로그램 속 브라우저가 하루아침에 바뀐 것이다. 사용자 대부분은 바뀐 줄도 몰랐다.

같은 방식의 계약이 인터넷 접속 사업자와 콘텐츠 회사들 전반으로 확장됐다. 윈도우 초기 화면의 목 좋은 자리를 내주는 대가로 인터넷 익스플로러 우선 배포를 약속받는 구조였다. 훗날 법정에서 이 계약서들이 무더기로 증거로 제출됐다. 조항들의 공통점은 사용자의 첫 화면에 무엇이 보일지를 유통 지배력이 정한다는 것이었다.

넷스케이프의 실책도 전황을 거들었다. 브라우저에 메일과 웹 편집기 등을 묶은 통합 제품 커뮤니케이터로 방향을 틀었지만, 4.0은 무겁고 불안정하다는 평을 들었다. 기능을 쏟아부으며 달려온 코드는 누더기가 됐고 근본 수리는 미뤄졌다. 상대가 운영체제라는 성벽 위에서 활을 쏘는 동안, 성 밖 도전자의 갑옷은 이음매부터 풀리고 있었다.

돈줄도 마르기 시작했다. 기업용 판매가 공짜 공세에 무너지자 회사는 서버 소프트웨어와 웹사이트 광고로 축을 옮기려 했지만, 어느 쪽도 브라우저가 벌던 것을 대신하지 못했다. 주가는 상장 첫날의 열기를 잊은 지 오래였다. 1998년 1월, 넷스케이프는 브라우저의 전면 무료화를 선언했다. 버티던 마지막 요금소를 스스로 연 것인데, 이미 공짜에 익숙해진 시장에서는 항복 선언으로 읽혔다.

잔디밭 위의 e

1997년 10월, 인터넷 익스플로러 4.0이 나왔다. 전세를 실질적으로 뒤집은 버전이다. 성능과 표준 지원에서 처음으로 넷스케이프와 대등하거나 낫다는 평가를 받았고, 무엇보다 윈도우와의 결합이 한층 깊어졌다. 브라우저가 파일 탐색기와 한 몸처럼 움직였고, 바탕화면 자체를 웹페이지처럼 꾸미는 기능까지 실렸다. 브라우저는 응용 프로그램 하나가 지워지듯 지워질 수 있는 물건에서, 운영체제의 일부여서 떼어 낼 수 없는 물건으로 바뀌어 갔다. 이 통합이 기술적 필연이었는지 법적 방어막이었는지는 곧 법정의 쟁점이 된다. 훗날 재판에서 정부 측은 브라우저를 윈도우에서 떼어 내는 시연까지 해 보였고, 마이크로소프트 측은 떼어 내면 운영체제가 망가진다고 반박했다. 소프트웨어의 경계가 어디까지인가라는 질문이 국가 대 기업의 소송에서 수백억 원짜리 쟁점이 된 것이다.

출시 기념 행사 다음 날 아침, 넷스케이프 본사 앞마당에서 직원들이 낯선 조형물을 발견했다. 사람 키만 한 인터넷 익스플로러의 e 로고였다. 밤사이 마이크로소프트 쪽 사람들이 몰래 세워 두고 간 것이다. 넷스케이프 직원들은 회사 마스코트인 공룡 모질라 인형을 그 위에 올려놓고 팻말을 붙였다. 넷스케이프 72, 마이크로소프트 18. 당시 점유율이었다. 지금 보면 여유 넘치는 응수지만, 그 숫자는 이후 빠르게 무너진다. 1998년을 지나며 두 브라우저의 점유율은 절반 언저리에서 교차했고, 역전 뒤에는 가속이 붙었다. 전성기의 넷스케이프가 그랬듯, 이번에는 인터넷 익스플로러 쪽으로 쏠림이 시작됐다.

법정이라는 두 번째 전장

전쟁의 다른 반쪽은 워싱턴에서 진행되고 있었다. 마이크로소프트와 미국 정부의 악연은 브라우저 이전부터였다. 1994년 회사는 운영체제 독점력 남용을 둘러싼 조사 끝에 법무부와 동의 판결을 맺었는데, 그 안에는 윈도우 라이선스에 다른 제품을 끼워 파는 행위를 제한하는 조항이 있었다. 1997년 법무부는 인터넷 익스플로러 끼워팔기가 바로 이 조항 위반이라며 법원에 제재를 청구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답변이 걸작이었다. 브라우저는 애초에 별도 제품일 수 없고 운영체제에 내장된 기능이므로 끼워팔기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논리였다. 4.0에서 브라우저를 운영체제에 깊이 꿰맨 것이 이 논리의 물증 노릇을 했다.

1998년 5월 18일, 법무부와 20개 주 정부가 정식으로 반독점 소송을 제기했다. 혐의의 뼈대는 운영체제 독점력을 지렛대 삼아 브라우저 시장의 경쟁을 질식시켰다는 것이었다. 배심원 없이 진행된 재판에서는 무기들이 하나씩 증거로 소환됐다. 컴팩에 보낸 해지 통보, AOL과의 거래 조건, PC 제조사 계약서의 조항들. 1995년 6월 넷스케이프 사무실에서 열린 회동도 도마에 올랐다. 넷스케이프 쪽 참석자들은 마이크로소프트가 시장을 나눠 갖자는 취지의 제안을 했다고 증언했다. 앤드리슨이 남긴 회의록에는 마피아 영화의 방문을 받은 기분이었다는 촌평이 적혀 있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그런 제안을 한 적이 없다고 맞섰다. 진위와 별개로 이 회동은 재판의 서사를 정해 버렸다. 거대 기업이 신생 기업의 사무실을 찾아와 시장을 나누자고 제안했고 거절당하자 짓밟았다는 이야기 구도는, 계약서 조항의 위법성을 따지는 법리 공방보다 재판정 밖의 여론을 움직였다.

재판의 명장면은 뜻밖에도 법정 밖에서 녹화됐다. 게이츠의 증언 녹취 영상이다. 정부 측 변호사 데이비드 보이스의 신문에 게이츠는 시종 낱말의 정의를 물고 늘어졌다. 경쟁이라는 단어가 무슨 뜻이냐, 우려한다는 표현이 무슨 뜻이냐, 그 메일의 ‘우리’가 누구를 가리키는 것이냐. 자기가 쓴 메일 내용을 기억하지 못한다는 답변이 반복됐다. 재판부는 이 영상을 법정에서 며칠에 걸쳐 재생했다. 의자에 파묻힌 채 몸을 흔들며 단어 하나하나에 시비를 거는 세계 최고 부자의 모습에 방청석에서는 웃음이 터졌고, 판사도 웃음을 참지 못한 순간이 있었다고 당시 기록들은 전한다. 법리와 별개로, 이 영상은 게이츠의 공적 이미지에도 영향을 줬다.

업계 인사들의 증언도 이어졌다. 인텔 임원은 마이크로소프트 쪽 인사가 넷스케이프의 산소 공급을 차단하겠다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고 했다. 애플 임원은 맥용 오피스 개발 중단을 지렛대로 브라우저 기본 탑재를 요구받았다고 진술했다. 증언이 쌓일수록 업계 전체가 한 회사의 지렛대 아래 놓였다는 그림이 선명해졌다.

1999년 11월 재판부는 사실 인정 판단을 내놨다. 마이크로소프트는 PC 운영체제 시장의 독점 기업이며 그 힘을 경쟁 제거에 썼다는 내용이었다. 2000년 4월에는 반독점법 위반 판결이, 그해 6월에는 회사를 운영체제 회사와 응용 소프트웨어 회사로 쪼개라는 분할 명령이 이어졌다. 표준석유와 AT&T의 계보를 잇는, 20세기 마지막 대기업 해체 명령이었다. 판결 당일 회사의 시가총액은 큰 폭으로 빠졌고, 신문들은 한 시대의 종언이라는 제목을 뽑았다. 실리콘밸리에서는 샴페인을 터뜨리는 회사들과 남 일 같지 않다며 변호사를 늘리는 회사들이 갈렸다.

집행은 다른 문제였다. 2001년 6월 항소법원은 독점과 위법 행위 인정은 유지하되 분할 명령을 파기했다. 담당 판사가 재판 중 언론과 접촉하며 부적절한 발언을 한 사실이 드러나 절차적 흠결로 지적됐고, 사건은 다른 판사에게 넘어갔다. 그사이 워싱턴의 정권이 바뀌었다. 새 법무부는 해체 대신 행위 규제로 방향을 틀었고, 2001년 11월 합의가 발표됐다. 회사는 쪼개지지 않았다. PC 제조사의 선택권을 넓히고 기술 정보를 공개하는 등의 의무를 지는 선에서 전쟁은 봉합됐다. 솜방망이라는 비판과 과잉 개입이 교정됐다는 반론이 지금까지도 맞선다.

마이크로소프트 쪽의 논리도 적어 둘 필요가 있다. 회사의 항변은 일관됐다. 브라우저를 공짜로 준 것은 소비자에게 이익이었고, 운영체제에 기능을 통합하는 것은 소프트웨어 발전의 자연스러운 방향이며, 넷스케이프의 몰락은 자신들의 방해가 아니라 그 회사의 제품 실패 탓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커뮤니케이터 4의 품질 문제는 당대 사용자들도 겪은 사실이고, 소비자가 지불한 브라우저 가격이 0원으로 수렴한 것도 사실이다. 반독점법이 보호하는 대상은 경쟁자 개개인을 넘어 경쟁 그 자체라는 원칙에 비추더라도, 소비자 후생이 늘었는데 무엇이 문제냐는 물음은 만만하지 않았다. 법원의 답은 이랬다. 지금의 공짜가 문제인 것이 아니고, 경쟁자가 사라진 다음의 시장이 문제다. 이후 IE6의 주요 판올림이 늦어졌다는 사실은 경쟁 약화의 비용을 논할 근거가 된다. 다만 한 회사의 한 시기를 독점 기업 모두의 법칙으로 일반화할 수는 없다.

승자의 계산서

법정의 결말이 어떻든 시장의 결말은 이미 나 있었다. 소송이 진행되는 동안에도 인터넷 익스플로러의 점유율은 오르기만 했다. 넷스케이프는 1998년 말 AOL에 인수되며 독립 회사로서의 이야기를 마감했다. 승자의 몫은 압도적이었다. 2002년 전후의 일부 웹 이용 집계에서는 인터넷 익스플로러 비중이 90퍼센트 중후반에 이르렀다. 집계 방식과 대상 사이트에 따라 최고치가 다르다. 전성기 넷스케이프의 80퍼센트를 훌쩍 넘는, 브라우저 역사상 전무후무한 독점이었다.

시점 넷스케이프 인터넷 익스플로러
1996년 80퍼센트 안팎 한 자릿수에서 10퍼센트대
1998년 절반 언저리에서 교차 절반 언저리에서 교차
2002년 전후 소수 점유율로 축소 일부 집계에서 90퍼센트 중후반

집계 기관과 시점에 따라 수치는 조금씩 다르지만 방향과 기울기는 같다. 6년 만의 완전한 역전에는 제품 개선과 유통 장악이 함께 작용했다.

다만 승자도 성한 몸이 아니었다. 회사는 세기말의 몇 년을 법정과 여론전에 소모했고, 게이츠는 2000년 최고경영자 자리에서 물러나 있었다. 이후 마이크로소프트가 새 시장에서 공격적으로 움직일 때마다 반독점의 기억이 회사 안팎에서 제동으로 작동했다는 평가는 여럿 남아 있다. 그리고 이 소송이 남긴 판례와 학습은 20여 년 뒤, 이번에는 다른 회사를 피고석에 앉히는 데 쓰인다. 구글이 검색 기본 자리에 돈을 지급하는 문제는 훗날 반독점 소송에서도 쟁점이 됐다.

1차 브라우저 전쟁의 승부처는 성능만이 아니었다. 사용자가 컴퓨터를 켰을 때 이미 놓여 있던 브라우저, 유통 경로와 기본값을 쥐고 내려받기의 문턱을 상대에게 떠넘긴 쪽이 이겼다. 죽어 가던 넷스케이프는 항복 문서에 서명하는 대신 다른 일을 벌였다.

이 장에서 함께 다루는 질문

빌 게이츠의 인터넷 해일 메모는 무엇이었나요?

1995년 5월 26일 게이츠가 임원들에게 돌린 여덟 쪽짜리 문서입니다. 인터넷의 중요도를 최상급으로 올리고 모든 제품 계획을 인터넷 중심으로 다시 짜라는 내용이었고, 경계 대상으로 넷스케이프를 명시했습니다.

컴팩 사건은 무엇을 보여 주나요?

컴팩이 자사 PC 바탕화면에서 인터넷 익스플로러 아이콘을 지우고 넷스케이프를 올렸다가 윈도우 라이선스 해지 통보를 받고 원상 복구한 일입니다. 훗날 법정에서 PC 제조사가 초기 화면을 마음대로 바꿀 수 없었다는 증거가 됐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반독점 재판에서 어떤 결과를 받았나요?

2000년 6월 회사를 둘로 나누라는 분할 명령이 나왔지만 2001년 6월 항소법원이 분할 명령을 파기했습니다. 독점과 위법 행위 인정은 유지됐고, 2001년 11월 합의로 제조사 선택권을 넓히고 기술 정보를 공개하는 의무를 지는 선에서 봉합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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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우저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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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 수정일 2026년 10월 17일

이 콘텐츠는 저자가 기획하고 AI 도구를 집필·정리 과정에 활용했습니다. 구성, 사실 확인, 표현, 최종 판단과 출판 책임은 저자와 보이드로그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