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장. 출발선 — 동굴에 숨은 사람과 바다를 건넌 사람

크라수스와 아티쿠스, 같은 내전을 맞은 두 청년의 출발

크라수스와 아티쿠스는 어떻게 다른 출발을 했나요?

같은 기원전 80년대의 내전이었지만 대응이 갈렸습니다. 크라수스는 아버지와 형을 잃고 히스파니아의 동굴에서 여덟 달을 숨어 지냈습니다. 아티쿠스는 재산의 큰 몫을 함께 아테네로 옮겼습니다. 한 사람은 잃은 다음에, 한 사람은 잃기 전에 움직였습니다.

기원전 80년대, 로마에서 두 청년이 도시를 떠났습니다. 한 사람은 쫓겨서 달아났고, 한 사람은 짐을 꾸려 배를 탔습니다. 둘 다 스무 살 안팎이었습니다.

히스파니아 남쪽 해안에 동굴이 하나 있었습니다.

바다에서 멀지 않았습니다. 절벽이 입구를 감싸고 있어서 안으로 들어가는 길은 좁고 잘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일단 들어서면 천장이 놀라운 높이로 열렸습니다.

이 동굴에 사람이 살았습니다. 하루에 한 번, 정해진 시각에 누군가 절벽 아래까지 먹을 것을 가져다 놓고 돌아갔습니다. 가져온 사람은 안을 들여다보지 않았습니다. 안에 있는 사람도 나가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여덟 달이 지났습니다.

동굴 안에 있던 사람의 이름은 마르쿠스 리키니우스 크라수스였습니다. 삼십 년 뒤 그는 로마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이 됩니다.

잃은 다음에 시작한 사람

크라수스의 아버지 푸블리우스 리키니우스 크라수스는 집정관과 감찰관을 지냈고 개선식까지 치렀습니다. 로마 정치의 최상층입니다. 크라수스는 그 집의 아들로 태어났고, 그 집이 무너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기원전 87년, 킨나와 마리우스가 로마를 장악했습니다. 반대편에 섰던 사람들이 죽었고 그중에 크라수스의 아버지와 형이 있었습니다.

크라수스 자신은 아주 젊었던 까닭에 당장의 위험은 피했으나, 사방이 참주들의 사냥꾼으로 둘러싸인 것을 알고는 친구 셋과 하인 열 명을 데리고 대단히 빠르게 히스파니아로 달아났다.

— 플루타르코스 『크라수스』 4.1

열세 사람이 함께 움직였습니다. 히스파니아를 고른 데도 이유가 있었습니다. 아버지가 그곳에서 총독을 지낸 적이 있어 아는 이름이 남아 있었습니다.

그가 찾아간 사람은 비비우스 파키아쿠스였습니다. 곧장 찾아가지는 않았습니다. 먼저 하인 하나를 보내 상대의 의중을 확인한 다음에 움직였습니다.

파키아쿠스는 크라수스를 집에 들이지 않았습니다. 대신 영지 안 동굴을 쓰게 하고, 관리인에게 매일 절벽 근처에 먹을 것을 두고 오라고 시켰습니다. 누가 그것을 가져가는지 묻지 말라는 지시가 함께 붙었습니다.

크라수스는 그곳에서 지냈고, 날마다 그 사람이 먹을 것을 가지고 왔다.

— 플루타르코스 『크라수스』 5.1

음식은 넉넉했습니다. 플루타르코스는 그것이 겨우 목숨을 잇는 정도가 아니라 만족시키려는 수준이었다고 적었습니다.

당시 로마에서 숙청 명단에 오른 사람을 숨겨 준 자는 처벌 대상이었습니다. 죽인 자에게는 포상이 있었습니다. 파키아쿠스는 여덟 달 동안 자기 목숨을 걸고 있었고, 정해진 시각에 먹을 것을 가져다 놓고 간 관리인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매일이었습니다. 한 번만 어긋나도 죽는 사람이 하나가 아니라 셋이었습니다.

파키아쿠스는 그 와중에 농담을 하나 했습니다. 여성 노예 두 사람을 동굴 쪽으로 내려보낸 것입니다. 크라수스는 그들이 오는 것을 보고 발각된 줄 알았습니다. 플루타르코스는 그가 곧 파키아쿠스의 호의어린 장난임을 알아차렸다고 적었습니다. 두 사람은 은신이 끝날 때까지 함께 지내며 바깥소식을 전했습니다.

그렇게 크라수스는 여덟 달을 숨어 지냈다. 그러다 킨나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자 모습을 드러냈다.

— 플루타르코스 『크라수스』 6.1

킨나는 기원전 84년에 죽었습니다. 크라수스가 동굴에서 나온 기준은 상황이 좋아졌다는 느낌이 아니라 자기를 쫓던 권력의 중심이 사라졌다는 소식이었습니다.

나온 뒤 그는 이천오백 명을 모았습니다. 그리고 여러 도시를 돌았습니다. 플루타르코스는 그가 말라카를 약탈했다는 혐의를 받았고 본인은 부인했다고 함께 적었습니다.

잃기 전에 옮긴 사람

같은 시기 로마에 스무 살 안팎의 다른 청년이 있었습니다.

티투스 폼포니우스는 대대로 기사 계층에 속한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원로원 가문은 아니었습니다. 로마 사회의 상층이되 정치의 한복판은 아닌 자리입니다.

네포스는 그의 아버지를 부지런하고 너그럽고 당시 기준으로 부유했으며 학문을 몹시 좋아한 사람이라고 적었습니다. 아들에게 필요한 교육을 다 시켰습니다. 함께 배운 아이들 중에 루키우스 토르콰투스가 있었고, 젊은 가이우스 마리우스가 있었고, 마르쿠스 키케로가 있었습니다.

그 아버지도 일찍 죽었습니다. 크라수스와 마찬가지로 그도 아버지 없이 스무 살 무렵을 맞았습니다.

그리고 그도 위험했습니다. 호민관 푸블리우스 술피키우스가 죽임을 당했는데, 폼포니우스는 그와 연고가 있었습니다. 사촌 아니키아가 술피키우스의 형제와 혼인한 사이였습니다. 킨나의 시대가 열리면서 그는 어느 쪽에도 서지 않고 지내기가 불가능해졌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는 이때가 학문에 전념하기에 알맞은 때라고 여기고 아테네로 건너갔다.

— 코르넬리우스 네포스 『아티쿠스』 2

그는 몸만 떠나지 않았습니다.

네포스는 그가 재산의 큰 몫을 아테네로 함께 옮겼다고 적었습니다. 스무 살 남짓한 사람이 내전이 본격화되기 전에 자산을 통째로 다른 관할로 이동시킨 것입니다. 로마에 남겨 두었다면 그 재산은 뒤이은 몰수와 숙청의 대상이 될 수 있었습니다.

그는 아테네에서 이십 년 가까이 머물렀습니다. 그 도시에서 얻은 별명이 ‘아티쿠스’입니다. 아티카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머무는 동안 그가 한 일 중에 기록에 남은 것이 있습니다.

정부가 돈을 빌려야 하는데 마땅한 조건을 얻지 못할 때면 그는 언제나 도왔다. 그런데 그 방식이 이러했다. 그는 그들에게서 이자를 받은 적이 없었고, 약정한 기한보다 오래 빚진 상태로 두지도 않았다.

— 코르넬리우스 네포스 『아티쿠스』 2

이자를 받지 않았다는 것, 그리고 기한을 넘기게 두지 않았다는 것. 호의와 규율이 한 문장에 들어 있습니다.

곡물도 나누어 주었습니다. 네포스는 한 사람 앞에 밀 일곱 모디우스씩 돌아갔다고 적었습니다. 당시 한 모디우스는 오늘의 무게로 육에서 칠 킬로그램 사이입니다. 한 사람이 사십 킬로그램이 넘는 밀을 받은 셈입니다.

그는 망명 중이던 젊은 마리우스에게도 돈을 보냈습니다. 킨나 쪽 사람입니다. 자신이 그 진영을 피해 로마를 떠났으면서도 그렇게 했습니다.

술라가 아테네에 왔을 때

몇 해 뒤 술라가 아테네에 왔습니다. 킨나 쪽을 무너뜨리고 로마를 되찾은 사람입니다.

술라는 이 젊은이를 곁에 두었습니다. 네포스는 술라가 그의 그리스어와 라틴어 언변, 그리고 두 언어로 시를 낭송하는 솜씨를 마음에 들어 했다고 적었습니다. 그리고 함께 로마로 돌아가자고 권했습니다.

아티쿠스의 대답이 남아 있습니다.

청컨대 저를 데려가 그들과 맞서게 하지 마십시오. 제가 당신과 맞서 무기를 들지 않으려고 이탈리아를 떠났던, 바로 그 사람들입니다.

— 코르넬리우스 네포스 『아티쿠스』 4

나는 당신 편에 서려고 떠난 적이 없고, 당신과 싸우지 않으려고 떠났다. 그러니 이제 와서 나를 반대편과 싸우게 하지 마라. 어느 쪽과도 싸우지 않겠다는 말을, 당시 로마에서 가장 강한 사람 앞에서 했습니다.

술라는 그 태도를 칭찬했습니다. 그리고 떠나면서 자기가 받은 선물들을 아티쿠스의 집으로 보내라고 지시했습니다.

아테네에 머무는 동안에도 그는 로마와의 관계를 끊지 않았습니다. 네포스는 그가 친구들의 선거에 참석하러 오갔고 그들의 중요한 일을 대신 처리했다고 적었습니다. 떠나 있는 것과 관계를 끊는 것은 다른 일이었습니다.

아테네는 그에게 시민권을 주려고 했습니다. 그는 받지 않았습니다.

어떤 이들은 다른 도시의 시민권을 얻으면 로마의 시민권을 잃는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 코르넬리우스 네포스 『아티쿠스』 3

이십 년을 살고, 그 도시에 돈을 빌려주고 곡물을 나누어 주고 사랑을 받았는데도, 로마인이라는 신분은 놓지 않았습니다.

그가 돌아온 것은 루키우스 코타와 루키우스 토르콰투스가 집정관이던 해, 기원전 65년입니다. 어린 시절 함께 배운 토르콰투스가 집정관이 되어 있었습니다.

아테네 온 도시가 그가 떠나는 날을 이렇게 보냈다. 그들은 눈물로써, 앞으로 그를 그리워하게 되리라는 마음을 나타냈다.

— 코르넬리우스 네포스 『아티쿠스』 3

네포스는 아티쿠스와 가까운 사이였고, 이 전기는 그를 기리려고 쓰였습니다. 도시 전체가 울었다는 서술에는 저자가 인물을 어떻게 보이고 싶어 했는지가 함께 들어 있습니다.

남는 것은 이십 년을 거래하고 떠나는 자리에 소송이나 원한이 아니라 배웅이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두 개의 출발 조건

두 사람이 마주한 사건은 같았습니다. 기원전 80년대 로마의 내전입니다.

닮은 점이 여럿입니다. 둘 다 아버지를 일찍 잃었습니다. 둘 다 정치적 연고 때문에 죽을 수 있는 자리에 있었습니다. 둘 다 스무 살 안팎이었습니다. 둘 다 이탈리아를 떠났습니다.

갈라진 것은 떠날 때 무엇을 가지고 갔는가 입니다.

크라수스는 몸만 가지고 갔습니다. 아버지와 형이 이미 죽은 뒤였고 가문의 재산도 무사하지 않았습니다. 친구 셋과 하인 열 명이 전부였습니다. 그리고 여덟 달을 동굴에서 남이 가져다주는 음식으로 버텼습니다.

아티쿠스는 재산을 가지고 갔습니다. 잃기 전에 움직였고, 옮긴 자산으로 아테네에서 이십 년을 살았습니다. 그 이십 년 동안 그는 빌리는 쪽이 아니라 빌려주는 쪽이었습니다.

이 차이가 돌아온 뒤의 경로를 갈랐습니다.

크라수스는 회복해야 할 목록을 가지고 돌아왔습니다. 되찾을 것이 분명한 사람에게는 빠른 경로가 필요합니다. 그가 택한 것은 이긴 편에 합류하는 길이었습니다. 킨나가 죽자 나왔고, 병력을 모았고, 술라 쪽에 섰습니다.

아티쿠스는 아무에게도 신세지지 않은 상태를 가지고 돌아왔습니다. 어느 진영에도 빚이 없었고 어느 진영에도 채권이 없었습니다. 술라의 선물조차 그가 요청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둘 다 자산입니다. 그리고 둘 다 나중에 값을 요구합니다.

빠른 회복 경로는 그 편이 계속 이겨야 유효합니다. 그렇게 얻은 것에는 누가 잃었는지에 대한 기록이 함께 붙습니다. 어느 편에도 서지 않은 상태는 안전한 대신 느립니다. 아티쿠스가 아테네에서 보낸 이십 년 동안 그의 재산은 크게 불어나지 않았습니다.

결말이 출발에서 결정되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두 사람 사이에는 삼십 년이 있고, 그 안에 수많은 다른 선택이 있습니다.

두 사람은 같은 위기에서 서로 다른 것을 지켰습니다. 그 선택이 각자에게 서로 다른 경로를 열어 두었습니다.

두 개의 곡선

두 사람의 삼십 년을 숫자로 옮기면 이렇습니다.

크라수스   동굴  →  300탈렌툼  →  (약 30년)  →  7,100탈렌툼  →  카르하이
아티쿠스   아테네 20년  →  HS 200만  →  HS 1,000만  →  77세까지 유지

숫자만으로는 규모가 잡히지 않으니 기준을 하나 놓겠습니다. 두 사람이 살아 있던 시기, 로마 군단병 한 사람이 받은 한 해 급여는 450세스테르티우스였던 것으로 전해집니다. 탈렌툼은 앞에서 밝힌 대로 1탈렌툼을 HS 24,000으로 환산했습니다.

금액 군단병 한 해 급여로
아티쿠스가 물려받은 재산 HS 200만 약 4,400명분
크라수스의 초기 재산 (300탈렌툼) HS 720만 1만 6,000명분
아티쿠스가 유증까지 받은 뒤 HS 1,000만 약 2만 2,000명분
크라수스의 말년 재산 (7,100탈렌툼) HS 1억 7,040만 약 37만 9,000명분

카이사르 시기 군단 하나가 서류상 사천팔백 명이었습니다. 크라수스가 마지막으로 세어 본 재산은 군단 일흔아홉 개의 한 해 급여에 해당합니다.

이 표는 회계표가 아닙니다. 환산 경로와 눈금의 시점은 「읽기 전에」에 적어 두었습니다. 급여 기준을 카이사르가 인상한 뒤의 액수로 바꾸면 오른쪽 열은 절반이 되고, 탈렌툼의 중량 기준을 달리 잡으면 가운데 열이 움직입니다. 그런데도 바뀌지 않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두 사람 다 부자였다는 말로는 이 표가 설명되지 않습니다. 같은 로마 상층 안에서도 자릿수가 하나 이상 벌어져 있습니다.

크라수스가 그 자릿수에 도달하는 데는 삼십 년이 걸렸습니다. 스물넷 배로 불어난 것은 사실이지만 한 해에 벌어진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이 표에는 두 사람의 결말이 들어 있지 않습니다. 자릿수가 큰 쪽이 먼저 죽었고, 작은 쪽이 일흔일곱까지 살았습니다. 재산 곡선 옆에 다른 표가 하나 더 필요합니다.

크라수스 아티쿠스
돈을 무엇과 바꾸었는가 지휘권과 명예 어느 편에도 서지 않을 자리
그 대가로 내준 것 철회할 수 있는 여지 더 빠른 증식
마지막에 남은 것 기원전 53년, 카르하이 기원전 32년, 일흔일곱 해

이 표의 빈칸을 당신의 것으로 채우는 자리가 각 장 끝의 [내 계좌에 옮기기] 입니다.

이제 그 삼십 년을 봅니다. 돈이 어디에서 왔고, 무엇으로 바뀌었고, 무엇을 지켰고, 무엇을 남겼는지 순서대로 봅니다.

[내 계좌에 옮기기]

두 사람은 스물몇 살에 자기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사건을 만났습니다. 그때 손에 남은 것이 이후 삼십 년의 출발선이 되었습니다.

1. 지금 당신이 가진 것 가운데 시장이 나빠져도 사라지지 않는 것을 적으면 몇 가지입니까. 기술, 자격, 관계, 평판, 현금 중 무엇이든 좋습니다. 목록으로 적어 보십시오.

2. 아티쿠스는 위험이 커지기 전에 재산을 다른 곳으로 옮겼습니다. 지금 당신의 자산 가운데 한 곳에서 문제가 생기면 같이 흔들리는 것은 몇 퍼센트입니까.

3. 소득이 끊겼을 때 버틸 수 있는 개월 수는 몇 개월입니까. 크라수스는 여덟 달을 버텼고, 아티쿠스는 이십 년을 떠나 있었습니다. 그 기간을 한 달 늘리려면 무엇이 필요합니까.

4. 위기가 왔을 때 당신에게 먹을 것을 가져다 놓을 사람의 이름을 적을 수 있습니까. 몇 명입니까. 그리고 당신은 누구에게 그런 사람입니까.


이 장에서 함께 다루는 질문

크라수스는 동굴에서 어떻게 여덟 달을 버텼나요?

친구 파키아쿠스가 영지 안 동굴을 쓰게 하고 관리인에게 매일 절벽 근처에 먹을 것을 두고 오라고 시켰습니다. 누가 가져가는지 묻지 말라는 지시가 함께 붙었습니다. 숨겨 준 사람도 처벌받던 시기라 세 사람이 목숨을 걸고 있었습니다.

그는 무엇을 보고 동굴에서 나왔나요?

상황이 좋아졌다는 느낌이 아니라 자기를 쫓던 권력의 중심이 사라졌다는 소식이었습니다. 킨나가 죽었다는 말을 듣고 모습을 드러냈고, 나온 뒤에는 이천오백 명을 모아 여러 도시를 돌았습니다.

아티쿠스는 술라의 제안을 어떻게 거절했나요?

당시 로마에서 가장 강한 사람 앞에서 어느 쪽과도 싸우지 않겠다고 말했습니다. 자신은 술라와 맞서 무기를 들지 않으려고 이탈리아를 떠났으니 이제 와서 그들과 맞서게 하지 말아 달라는 대답이었습니다.

떠나 있는 것과 관계를 끊는 것은 같은 일인가요?

다른 일이었습니다. 아테네에 머무는 동안에도 친구들의 선거에 참석하러 오갔고 그들의 중요한 일을 대신 처리했습니다. 아테네가 시민권을 주려 했을 때는 로마 시민권을 잃을 수 있다는 이유로 받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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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 수정일 2026년 9월 3일

이 콘텐츠는 저자가 기획하고 AI 도구를 집필·정리 과정에 활용했습니다. 구성, 사실 확인, 표현, 최종 판단과 출판 책임은 저자와 보이드로그에 있습니다.